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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벅(Lubbock)에서의 200일

이 곳 러벅(Lubbock)에 정착한지 200일이 지났다.

그간 무엇을 많이 먹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닭고기와 소고기를 많이 먹었다.

자연스레 채소와 과일을 보면 손이 더 간다.


영어는 처음보다 조금 더 수월해졌다.

그냥 조금 더 수월해진 정도다.

아는 단어의 한계가 있다보니 쓰는 말들이 정교하지 못하다.


이 곳에서 나는 'TK'라 불린다.

식당이나 커피숍에서 항상 이름을 물어보는데, 딱히 영어 이름이 없어서 내 이름 이니셜 TK를 외치다가

연구실에서나 어디에서나 이제는 TK로 통한다.

처음에는 다소 간지러웠는데 지금은 cool 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 곳에서 나름 열심히 달려온거 같다.

학회 포스터 2개를 만들었고, 논문으로 쓸만한 연구 주제가 2~3개 생겼다.

예전 같으면 마냥 뿌듯했을텐데,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었다.

생각할 것이 많아지는 시기다.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제는 뒤를 돌아보고 옆을 둘러본다.


희생을 통한 성취를 흐르는 시간에 빗대어 고찰할 때,

그것이 얼마나 가치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자주한다.

갈등과 고민이 깊어질수록 내 스스로가 작아지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의공학을 접한지 10여년이 되어간다.

연구자 혹은 엔지니어로서 길을 계속 걸어가고자 마음 먹었는데,

박사 과정의 입학을 앞둔 시점에서 도대체 내가 왜 박사가 되고 싶은지, 내가 뭘 연구하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한 때, 의공학의 매력에 심취해 여기저기 너무 다방면으로 기웃거렸던 탓일까.


그러나, 이런 고민의 기회를 갖게 해준 나의 모교와 지도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사실, 늘 감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문에 임하는 철학을 일찌감치 형성할 수 있을테니까.


나는 대학 3학년때부터 연구실 생활을 시작했고, 석사때까지 논문 10편을 쓰고자 마음먹었었다.

그 시절은 질보다 양에 민감한 시기였다. 높은 편수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높은 편수는 분명 시선을 사로잡을만 하다. 그러나 약점은 깊이의 결여다.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대로 하다보니 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

내가 지금에와서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이라 여겨진다.

박사과정은 한 분야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그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제시하여 인간세계의 발전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나의 그 한 분야가 잘 안잡힌다.


사실, 덮어두고 따라가는 속 편한 방법도 있다.

흥미라는게 처음에는 없다가도 해당 분야의 지식이 계속 쌓이다보면 저절로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고민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테다. 지금의 나처럼.


가끔 여기 주변의 학생들을 보면 (특히, 유학생들) 다들 학창시절에 공부를 어마하게 했던 친구들이라 내가 이 곳에 섞여 있다는거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래, 신기한게 맞다.

섞여 있다 뿐이지 같은 수준은 아니니까.

그러나 이 친구들이 갖지 못한 것을 나는 분명 갖고 있다.

그 미묘한 무언가가 나를 돋보이게 만들어주고, survive 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공학자에게 요구되는 배경지식의 부족을 경험하다 보니, 모교의 후배들은 응용학문이나 창의, 융합 따위의 것들 보다는

수리과학의 기초를 조금 더 잘 다질 수 있는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초 탄탄'은 어딜가나 참 중요하다.

소속 학과나 연구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공학 박사과정을 고민하는 이 시점에 수리과학 학문의 기초가 부실한 것이 매우 크게 작용함을 인지했다. 취업을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번 글은 지인들에게 '나 살아있음'을 알렸으면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된다.

다음 글에서는 조금 더 유익한 의공학 관련 내용이 될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해본다.



이 모든 내용은 나의 경험과 느낌에 의존해 작성하였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글쓴이: 김태훈(Research Scientist, Texas Tech University)